입체파(CUBISM)와 네덜란드의 데 스틸(DE STIJL)운동에 대한 연구조사 -대학 과제

큐비즘은 유럽회화를 르네상스 이래의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해방시킨 회화혁명으로 1907~08년경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하여 창시되었다. 이 운동은 1907년부터 1914년까지에 걸쳐 파리에서 일어났다. 1908년 브라크가 그린 [에스타크 풍경]이란 연작(連作)을 평가하여 [조그만 입체(큐브)의 덩어리]라고 말했던 데서 이 명칭이 유래하였고,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6~07)이 그 최초의 작품이다.
이 운동의 발전은 일반적으로 세잔느적 큐비즘(1907~9), 분석적 큐비즘(1910~12), 종합적 큐비즘(1913~14)3단계로 나누어 고찰될 수 있다. 1908~09년에 있어서 피카소와 브라크의 예술에 세잔느가 [자연을 원추, 원통, 구체로 다루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기초가 되어 영향을 주었다. 대상의 존재성을 기본적인 형태와 양에 의해 포착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세잔느적 큐비즘이다. 이 대상 형태는 점차 섬세한 면분할을 가하여 분석적단계에서 모서리 깎기, 세공 같은 화면에다, 대상을 기호화 부분만 남기고는 추상적인 성의 요소로 처리해 버렸다. 이에서 대상의 존재성을 회화적으로 해명하려던 당초의 목적과는 정반대로 회화는 현실감과 일상성을 상실하여 그 회복책으로 트롱프 뢰이유(속임그림)나 파피에 콜레의 수법이 도입되었다. 큐비즘은 이에 따라서 종합적단계로 옮겨갔으나, 여기서 분해된 대상의 각 부분에 의도적인 형태와 색채를 부여, 이것들을 합목적적으로 종합하여 회화의 이차원성을 손상시키지 않고 대상의 현실성과 회화의 감각적인 요소를 회복하게 되었다. 과거의 회화가 시각의 리얼리즘이었음에 반해 큐비즘은 개념의 리얼리즘을 주장하여 삼차원적인 현실세계의 개념을 이차원적 회화로 번역함과 동시에, 회화를 하나의 미적존재로 결실케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화가는 몽마르트르의 바토 라브와르에 거주했던 피카소, 브라크, J.그리스의 3인 이었으나, 그밖에도 몽파르나스에서 화면에 밝은 색채와 다이나믹한 운동을 도입했던F. 레제와 R. 들로네가 있었고, 또 퓌트에는 화면의 구성원리를 극도로 추구하여 추상예술에의 길을 열었던 F. 쿠프카와 J.비용, M.뒤샹, R. 뒤샹-비용의 3형제 등이 있었다. 1911년 그들은 한곳에 모여 앵데팡당전에 작품을 전시하고 대시위운동을 벌였고, 이듬해에 [색숑도르]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아폴리네르, 아드레 살몽, 모리스 레이날 등이 비평가로서 이 운동을 지원했다. 운동으로서의 큐비즘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은 20세기 개혁의 첫번째 파도에 종비부를 찍었고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 활동을 방해하거나 끝내 버렸다. 전시 동안 모든 국가는 고립되었으며 예술적 실험에 있어서 프랑스가 누렸던 우월성은 땅에 떨어졋다. 미술 조각, 건축의 현대적 개념이 재검토됨으로써 새로운 실험과 사상이 출현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이 지도적 위치를 점하기 시작했다. 추상에서 러시아의 실험인 절대주의와 구성주의는 만약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말레비치, 타틀린, 칸딘스키, 가보 등이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되지 않았더라며 그들이 획득했던 지위를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고립의 결과로 나타난 놀라운 예는 전쟁 기간에 증립을 지몄으며 그 결과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양진영에서 제외되었던 네덜란드가 이룬 주목할 만한 자국 미술의 반전에서 볼 수 있다. 19세기에 베네룩스 3국중 네덜란드에서는 재능있는 수많은 화가와 한면의 천재 -프랑스 인상주의자들과 탈인상주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당대의 최고의 업적을 획득하였던 빈센트반 고흐- 를 배출하였다. 20세기초, 파리에 매혹된 반 동겐을 포함한 네덜란드 실험주의자들은 야수파나 큐비즘 같은 프랑스의 운동에 동화되었다.
1차대전중에 있었던 혁명적인 현대 미술로의 변화의 궤적은 금세기 위대한 거장의 한사람인 피에 몽드리앙의 작품 활동에서 볼수 있다. 그는 곧 자신과 비슷한 야심을 가진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은 바르트 반데어 렉과 테오 반 되스부르그였다. 반 되스부르그는 [데 스틸] 그룹의 형성과 정기 간행물 [데 스틸]의 출간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큐비즘의 확산으로 네델란드에서는 반 되스부르그가 1917[데 스틸]이라는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였다. 이것은 전통의 절대적인 가치 절하 ...... 서정주의와 감상주의라는 기만을 전면적으로 폭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관계한 화가들은 추상과 단순화의 필요성를 추구했다. 그들의 작품들에는 거의 동시에 이러한 성질들 -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원색과 검은색, 흰색, 회색 등의 무채색으로 단순화된 색채를 통해서 뿐 아니라, 직선, 사각형, 정육면체 등을 통해 전달되는 - 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데 스틸 화가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단순화는 동양 철학과 신지학의 현대적 가르침에 근거한 상징적인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 강조되어야만 한다.
데 스틸의 사상에서 가장 큰 중요성을 지니는 것은 예술가들의 공동작업이라는 개념이었으며 그것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 그래픽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간의 공통된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회화에서 세잔느, 건축에서 프랭크 로이드라이트, 베를라헤와 혹은 베어렌스, 그리고 좀 나중의 반 데 벨데 등 소수의 선구자만을 거장으로 인정했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를 강력히 옹호하고 새로운 조형예술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렇듯 데 스틸운동은 단순히 회화에만 국한되 것이 아니라, 조각·건축·디자인 등 각 분야에 걸쳐 신조형주의의 원리를 넓히려 한 것으로,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양 대전 사이에 유럽 예술전체의 동향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입체파(CUBISM)
네덜란드의
데 스틸(DE STIJL)운동에 대한
연구조사







제출일 : 1996513
과 목 : 디 자 인 사
학 과 :
학 번 :
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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